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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지방 명승지
| 2003·11·18 00:15 | HIT : 6,570 | VOTE : 694
자남산 - 높이 104m의 자남산은개성시의 중앙에 있다. 자남산은 옛부터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공원으로서 알려져있다. 산 정상에서는 개성시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산 기슭에는 고려의 귀중한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고려박물관이 있다.


옛날에는 용수산 또는 남산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이산의 서편에는 영웅호걸을 키운다는 상징적인 부석이 있고, 이 바위가 남자(인물)를 배출시킨다고 하여 남산 또는 자남산이라고 부른다.


자남산 아래에는 고려시대 무신독재 정권을 세운 최충헌이 살았다고 하며 훗날 공민왕은 그가 살았던 집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꽃밭과 팔각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팔각전에서 고려말 이성계일파에거 우왕이 체포되어 귀향갔다고 한다.


선죽교 -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교로써 지남산의 산기슭에 있는 선죽동의 개성남대문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km떨어진 작은 강에 걸쳐있다.
선죽교는 정몽주가 정권을 뺏으려고했던 이성계등으로부터 암살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다리는 1216년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고, 다리이름을 선죽교로 바꾼 것은 15세기 80 이전이라 한다. 다리는 화강암을 깍아서 만들었고 다리에는 원래 난간이 없었지만. 정몽주의 자손이 1780년에 다리를 보존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만든것이다.


원래 다리의 이름은 선지교였지만. 유학자였던 정몽주가 암살된 날 밤 여기에 청죽이 다라났기 대문에 개명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선죽교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옛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표충비 - 이조시대 영조와 고종이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를 찬양하는 뜻에서 세운 비로서 비신에는 정몽주를 찬양하는 왕들의 필적으로 된 비문이 새겨져있다.


선죽교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며 두 개의 비석이 한 비각속에 나란히 있는데, 북쪽비는 조선영조 16년인1740년에 세웠고 남쪽비는 고종9년인 1872년에 세운 것이다.


관덕정 - 개성시가 내려다 보이는 자남산 위에 우아한 관덕정이 있다. 관덕정은 옛날부터 개성시 중에서도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곳에 세워져 있다. 이 정 아래에는 원래 작은 초가지붕의 정자가 있던 것을 1789년에 개성관량(당시의 무사)들이 규모를 크게 하기위해 다시 세우고, 활궁연습장으로 한 곳이다. 현재의 것은 정면 3칸(5.84m),측면2칸(3.18m)아다. 내부의 장식은 턴정에 금단청이 그려져있다.


숭양서원 - 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에 있다. 자남산을 배경으로 해서 남쪽으로 향해 위치하고 있는 숭양서원은 고려말에 창건되어 이조시대에 수복된 사립교육기관이다. 숭양서원은 원래 고려말기 저명한 유학자였던 정몽주가 살고 있던 저택지이다. 현재 건물은 1573년에 재건된 것.


이조시대에 개성 양반들은 이지뱡과 연고가 있는 유핫자의 제사를 지내며, 동시에 자신들의 자식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이 서원을 세웠다. 숭양서원은 사립교육기관으로서 지방교육사정과 서원의 배치형식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흥국사탑 - 흥국사탑은 자남산 산기슭 개성역사 박물관 앞뜰에 위치해있다. 이 탑은 원래 개성시의 흥국사지에 있었지만 1936년에 현재의 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 탑은 1018년 12월 10만 대군울 이꿀고 3차례 고려침략을 강행했던 거란군이 격퇴했던 귀주(현재의 평안북도 귀성)전투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1021년 5월에 나라의 안녕을 비는 뜻에서 세운탑이다. 이 탑의 지금 높이는 2.61m인데 원상태로 복구한다면4.4m정도가 된다.


개국사 석등 - 고려초기 석등인 개국사 석등은 현재 나남동에 있는 개성역사 박물관 앞뜰에 있다. 개국사는 935년 고려초기에 세워진 대사원이고,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이조시대에 폐사가 되어 버렸다. 이 석등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등중 비교적 큰 것의 하나이고 놓이는 약4m에 이른다.


송악산 - 고려시대의 역사적유적이 많이 남겨져있는 송악산은 옛날부터 사계를 통해서 푸른 소나무가 많은 곳으로 표고489m높이로 솟아있다. 송악산과 그 기슭에는 만월대, 개성 첨성대, 개성 성균관, 발어참성 개성성, 외성등의 고적이 있다.


만월대 - 만월대는 송악산 남쪽기슭 해발 50m에 위치해 있다.
고려왕궁이 있던 곳으로, 처음에 후삼국시대의 태봉국의 왕궁으로서 세워졌었다. 태봉국은 여기에 발어참성을 쌓고, 수도를 철원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기고 8년간을 지냈다.
만월대는 고려궁성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이름이나, 요즘엔 회경전을 중심으로 몇 개의 궁전이 있던 곳을 부르는 이름으로 되었다. 고려왕궁의 면적은 125만m2이다.


발어참성 - 발어참성은 송악산동을 중심으로 한 송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성 주위가 약40km나 된다. 개성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으로서, 지금으로부터 1000여년전인 896년에 송악군(당시의 개성) 사창(관직명)이었던 왕륜이 쌓아, 이성의 최초 성주로서 자식인 왕건을 임명했다.


공민왕릉 -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이 왕릉은 현릉(공민왕묘)과 정릉(왕후의 묘)의 쌍묘로, 공민왕이 7년여에 걸쳐 스스로 축조했던 것이다.


개성 남대문 - 개성시 북안동에 있는 개성 남대문은 그 양식과 수법이 뛰어난 주문이므로, 개성하면 곧 남대문이 연상될 만큼 옛날부터 널리 알려져있다. 남대문은 고려말기부터 이조초기에걸쳐 개성성의 내성을 쌓을 때 그남문으로서 세워졌다. 내성에는 원래 남대문 동대문등 일곱의 성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남대문에 주문을 남긴 것 뿐이다. 이남대문은 장방형의 모난돌로 쌓아져 아치형의 통로를 갖는 축대위에 서있다. 경쾌하게 휘어진 지붕과 마룻대가 문의 안정감과 조화해서 당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고 누문에는 중단청이 입혀져있다.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 34호로 지정되어있다. 개성시를 중심으로한 약6~8km 주변에는, 고려역대의 왕과 왕후 왕족묘가 많고, 특히 송악산 북쪽과 개성서쪽 방수산 남쪽구릉지대에 20여묘나 있다.


개성 성균관 - 개성시 부산동에 위치해 있으며 송악산 동측 산록의 큰 바위 뒤의 완만한 경사지에 넓게 세워져있는 개성 성균관은 고려초기에 건조되어 이조시대에 개축된 교육기관이다. 원래 이 건물은 11세기초엽에 대명궁이라는 고려의 별궁으로서 세워졌다.그 후 이 궁전은 종종 외국으로 부터오는 국빈을 머물 게 하는 숙소로 사용되어 그 이름을 순천관이라고 불렀다. 또 유교경전에 관한 사무를 보는 숭문관으로서도 사용되었다. 고려말기에 성균관의 책임자는 당시 저명한 유학자인 이색이었지만, 정몽주와 같은 학자들도 여기에서 유학을 가르쳤다. 개성 성균관은 남북중심축을 따라 대성전을 중심으로한 북측구역과 명륜당을 중심으로한 남측구역으로 구분되어 배치되어있다.


개성 첨성대 - 만월대 고려왕궁의 서쪽에 위치해있는 개성 첨성대는 고려가 이 곳에 궁성을 축조한 초기에 세워졌다. 고려에서는 건국초기부터 천문 기상관측기관을 두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전문가들은 천문대의 관측결과를 기록해 두었다. '고려사'천문지에는 태양의 중점을 관측한 기록만도 1105년부터 고려말기에 이르기까지 500여권이나있다. 고려는 유럽보다도 수백년이나 앞서 태양의 흑점에 대한 관측을 행해왔던 것만 아니라 그것을 수백년이나 계속해 왔던 것이다.  


박연폭포 - 개성시 중심으로부터 26km 산성리의 천마산과 성거산에 끼어 계곡에 있고 높이는 35m이다. 폭포위에 박연이라고 불리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고모담이라고 불리우는 직경 40m의 용추의 물가에, 큰 '용암'이 수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용추의 동쪽언덕에 범사정이라는 절이 있다. 옛날 어느 만월밤 박진사라는 청년이 불고 있는 피리소리에 홀려서, 이 호수의 용녀가 그에게 반해 호수속으로 유인해가 버렸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픈나머지 폭포밑에 몸을 던졌다. 그 이후에 호수를 박연이라하고, 폭포밑 담을 고모담이라고 부른다고한다.
옛날부터 조선 3대폭포의 하나이며, 북한 천연기념물 지리부분 제388호이다.  


대흥산성 - 대흥산성은 개성시 박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이 산성은 박연폭포뒤에 있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의 계곡을 감싸는 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서 쌓은 성이다. 경내에는 관음사. 대흥사를 비롯해 9개의 사적이 있다.


관음사 - 관음사는 천마산과 성거산을 끼고 깊은 계곡사이로부터 박연으로 흘러들어가는 맑고 푸른물이 모여 수정과 같은 연지를 만든 용담가까이에 있다. 이 건물은 고려 초기에 처음 세워져, 이조 중기에 재건되었다. 관음사는 원래 5동으로 되어있지만, 현재는 대웅전과 중방, 7층석탑과 관음굴만이 남아있다.


불일사5층탑 - 이 탑은 951년에 고려 광종이 모친을 위하여 세운 불일사지에 있던 것을 1960년에 개성시내의 봉평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그 때 탑내에서 탑과같은 형태를 한 금동제탑이 발견되어 현재 개성역사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높이 8m의 단조로운 각형 석탑이지만, 상하 균형이 잡혀져있어 중감이 있는 고려초기 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연복사종 - 개성 남대문의 성루에 있는 연복사종은 1346년에 축조되어 연복사에 안치되게 되었다.
강원도 평창의 생원사종, 경북 경주의 봉덕사종(에밀레종), 충남 천안의 성거사종등과 함께 저명한 4개의 종 중의 하나이다. 연복사는 고려 개성의 사원 중에서도 명찰의 이름이 높았던 절이나, 1563년에 소실될 때 종은 남대문으로 옮겨져 1900연도 초까지 시각을 알리기위해 울렸었다. 동합금제의 이 종은 놓이 3.3m, 구경1.9m, 두께23cm, 무게 약14t이다. 종신의 중앙부에 수조의 횡선을 둘러쳐 그 상하에 불상이나 각종문양 명문등이 새겨져있다. 입가장자리는 파상으로 굴곡을 이루고, 그 주위에 파도에 실려 움직이는 물고기, 용, 봉황, 기린, 게등을 배치해서, 상부에 주조년대와 유래를 각명하고 있다. 이는 북한 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판문점 - 한반도를 횡단하고 있는 전장 240km의 군사경계선을 끼고 그 양측에는 각각 2km폭의 비무장지대가 설치되어 있다. 판문점이 세계속에 알려지게 된 것은 6.25전쟁후 정권협정에 조인한 곳이고, 그 후 오늘날까지 여기에서 군사 정전위원회 회의를 비롯해 남북회담등 일련의 회담이 행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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